"아버지 이름 지웠다" 가명으로 등단한 스물넷,
그녀를 키운 건 '도스토예프스키'와 '린드그렌'이었다
부제: 시인에서 소설가로, 노벨상까지 이어진 30년의 문학 여정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생각 근육을 키워주는 아우라블루미입니다. 🌸
지난 1, 2편에서는 한강 작가의 어린 시절과 부모님의 '무위(無爲) 교육'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오늘은 그 토양 위에서 자란 소녀가 실제로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 그 치열했던 성장기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유명 소설가의 딸이었지만, 그녀는 아버지의 이름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안정된 직장이 있었지만,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스물셋의 시인, 스물넷의 소설가, 그리고 쉰넷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기까지. 한강을 만든 결정적인 '책'과 '선택'들을 소개합니다.
1. "한강현(韓江賢)"... 아버지의 이름을 지우다

1993년 겨울,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한강이라는 이름으로 시 5편이 실립니다. ("얼음꽃", "유월" 등). 그녀의 첫 등단은 소설가가 아닌 '시인'이었습니다. 특유의 시적이고 서정적인 문체의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었죠.
하지만 1년 뒤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을 투고할 때 그녀는 '한강현'이라는 필명을 씁니다.
왜 본명을 숨겼을까요?
이미 문단의 거장이었던 아버지 한승원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혹여나 실력이 아닌 후광으로 평가받을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신의 글만으로 승부하고 싶었던 스물넷 청춘의 대단한 독립심이 엿보이는 대목입니다.
결국 <붉은 닻>은 당선되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그녀가 한승원의 딸인 줄 꿈에도 모른 채 작품성 하나만으로 그녀를 선택했습니다.
2. 사표를 던진 용기 "이 길뿐일까?"
등단 직후 그녀는 잡지사 『샘터』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직업이었고 월급도 나왔지만, 그녀의 내면은 갈증을 느꼈습니다.
1995년, 첫 소설집 『여수의 사랑』을 출간한 뒤 그녀는 중대한 결단을 내립니다. 안정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 길뿐일까, 하는 끈질긴 의문을 버리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난다." (작가의 말 중)
아버지를 보며 작가의 삶이 얼마나 고단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그녀는 기꺼이 그 가시밭길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과감한 결단력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노벨상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3. 소녀를 키운 건 '8할이 독서'였다

한강은 어떤 책을 읽고 자랐을까요? 2014년 네이버 '지서재' 인터뷰와 노벨상 수락 연설 등에서 그녀는 자신의 뿌리가 된 '인생의 책'들을 고백했습니다.
📚 한강의 World Building Books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사자왕 형제의 모험>: 열두 살에 읽은 이 동화는 그녀에게 "세상은 왜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폭력적인가?"라는 평생의 화두를 던졌습니다.
- 임철우 <아버지의 땅>: 중3 때 읽으며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완벽에 가까운 문장력에 전율했습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어둠과 구원을 탐구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놀랍지 않으신가요? 열두 살, 열다섯 살에 이미 죽음, 폭력, 역사와 같은 무거운 주제의 책들을 읽어냈습니다. 한강의 부모님은 "애들이 읽기에 너무 어둡다"며 책을 뺏지 않았습니다. 그 깊고 진지한 독서가 그녀의 내면을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4. 20년 동안 서랍 속에 넣어둔 시(詩)

소설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녀가 첫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낸 것은 등단 20년 만인 2013년이었습니다.
그녀는 20년 동안 쓴 시들을 섣불리 발표하지 않고 '서랍' 속에 묵혀두었습니다. 고통과 침묵의 언어들이 충분히 숙성되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시집의 끝은 죽음과 삶 사이에서 삶 쪽을 향해 가는 나무로 맺고 싶었습니다."
빠르게 결과물을 내라고 재촉하는 세상에서, 20년을 기다려 한 권의 책을 묶어내는 그 끈기와 인내야말로 한강 문학의 진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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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 예고] 4편: 세 남매 모두 작가로 - 문인 가족 이야기
한강 작가뿐만이 아닙니다.
오빠 한동림, 남동생 한강인까지 삼 남매가 모두 신춘문예를 통과했다?!
여수 바닷가 작업실에서 함께 글을 쓰는 이 특별한 가족의
'문학적 연대' 이야기를 다음 편에서 공개합니다. (이웃 추가 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