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먼저 됐다"... 오빠의 좌절과 반전 드라마
세 남매를 모두 작가로 키운 '문인 가족'의 비밀
부제: 소설가 한강, 동화작가 한동림, 만화가 한강인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건강한 자존감을 키워주는 아우라블루미입니다. 🌸
지난 편에서는 아버지의 후광을 거부하고 홀로 선 한강 작가의 독립심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그 등단 뒤에 숨겨진 가족들의 애틋하고도 복잡한 사연을 깊이 들여다보려 합니다.
1994년, 동생 한강이 먼저 소설가로 등단했을 때, 사실 오빠는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질투와 상처로 멀어질 수도 있었던 이 위기.
한강 가족은 어떻게 이 시기를 넘기고 아버지와 삼 남매가 모두 작가가 되는 기적을 만들었을까요? 형제자매를 키우는 부모님이라면 꼭 읽어봐야 할 '건강한 경쟁' 이야기입니다.
1. 1994년의 딜레마: "왜 동생이 먼저..."
1994년 1월,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자가 발표되었습니다. 단편소설 <붉은 닻>의 작가는 '한강현', 바로 스물넷의 한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경사스러운 소식 앞에서 집안 분위기는 미묘하게 얼어붙었습니다. 바로 오빠 한규호(필명 한동림) 때문이었습니다.
오빠는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91년부터 신춘문예 최종심까지 오르며 오랫동안 작가를 준비해온 '기대주'였습니다. 반면 동생 한강은 이미 시인으로 등단한 상태에서 가족 몰래 소설을 써서 덜컥 당선이 되어버린 것이죠.
"같은 작가 지망생인 오빠를 제치고 먼저 작가가 됐다는 게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니었어요. 지금이 '레이디 퍼스트' 시대라지만, 순서가 있는 법이니까요." (한강 작가의 회고)
아버지 한승원 작가 역시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딸의 재능이 놀랍고 기뻤지만, 낙방한 아들의 뒷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기 때문입니다.
"딸 당선은 기쁜데 아들은 안됐고... 희비를 동시에 맛봐야 했지요. 참 난처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이기에 더 축하해주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잔인한 1994년이었습니다.
2. 1995년의 반전: 포기하지 않은 오빠의 '한 방'
오빠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동생에 대한 질투 대신 '드러낼 수 없는 좌절감'을 펜 끝에 꾹꾹 눌러 담았습니다. 동생 한강 역시 오빠에게 미안해하며 끊임없이 격려를 보냈죠.
그리고 정확히 1년 뒤인 1995년 1월, 한동림의 단편소설 <변태시대>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됩니다!
아버지 한승원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올해 아들 당선 소식을 듣자 그동안 뭔가 꽉 막혔던 것이 일시에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로써 아버지, 딸, 아들 세 사람이 모두 '서울신문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가 되는, 한국 문단 초유의 진기록이 완성되었습니다. 서로의 속도는 달랐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만난 것입니다.
3. 소설가, 동화작가, 만화가... 다채로운 삼 남매
이 집안의 문학 DNA는 단순히 '소설'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세 남매는 각자의 색깔로 활짝 피어났습니다.
첫째 한동림(한규호): 스테디셀러 동화작가
오빠는 소설뿐만 아니라 동화작가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학부모님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셨을 『받침 없는 동화』 시리즈가 바로 그의 작품입니다. 한글을 막 떼는 아이들을 위해 '받침 없는 글자'로만 이야기를 만든 이 기발한 책은 작품성과 상업성 모두를 잡았습니다.
막내 한강인: 만화와 소설의 경계를 넘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막내 역시 소설을 쓰면서 만화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형과 누나와는 또 다른 자유로운 방식으로 예술의 길을 걷고 있죠.
어머니 임감오 여사의 유쾌한 한마디
"남편(한승원) 글은 읽기 쉬운데 딸 글은 너무 어려워요. 그래도 우리 딸 만세!"
어머니는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자녀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응원했습니다. 이것이 삼 남매가 비교당하지 않고 각자의 개성대로 자란 비결입니다.
4. 여수 바닷가의 '공동 작업실'과 아버지의 업(Karma)

1995년, 아버지는 여수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작은 아파트를 공동 작업실로 마련했습니다. 아버지와 딸, 아들은 이곳을 번갈아 쓰거나 때로는 함께 모여 글을 썼습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자신과 똑같은 고통스러운 창작의 길을 걷는 것을 보며 복잡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마치 애비의 업고(고통스러운 업)를 자식에게 대물림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이어 이렇게 덧붙입니다.
"전생에 지은 업이 많아 글 쓰는 일을 대물림한 것 같지만... 꽃씨를 심으면 꽃이 나듯, 글쓰기라는 좋은 업을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등을 바라보며 침묵 속에 글을 쓰는 가족. 고통스럽지만 아름다운 그 길을 함께 걷는 '문학적 연대'가 노벨상의 진짜 뿌리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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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인간의 고통을 직시하며 세계 문학의 정점에 선 한강.
노벨상 수상이 우리 아이들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를
마지막 편에서 정리해 드립니다. (구독 추가 꾹! 🔔)